전 포스팅에서 커피의 첨가물에 대해서 줄줄이 나열하면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오늘날 커피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라 하면 (대부분의 리플에서도 보이듯이) 설탕와 우유의 투탑 체제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커피 전체의 90%이상을 차지하는 '물'이긴 한데. 에비앙과 삼다수의 물맛 차이와 같은 밍밍찝질한 내용으로 내가 써놓고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글이 되어버리므로 제끼기로 하고 만만한 설탕이나 붙잡고 흔들어 보겠슈.
요즘처럼 건강이니 다이어트니 하는 것이 주목받는 시대에는 설탕이야말로 돌을 던져서 쳐죽여야 할 건강파괴범으로서 현상금 랭킹 최상위권이지만, 인류가 설탕에 넌덜머리가 날 만큼 흔하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나 가능한 일이지 말입니다.

개구리 다리라던가 마녀의 눈알, 용의 비늘 이런거 진짜 파는거 아닌가 모르겠슈.
만성적인 영양부족이 일상이었던 중세 시대에는, 설탕은 직접적인 에너지 공급원으로서 일종의 약처럼 취급받았고 병원이나 약재상에서 흔히 처방되고는 했습니다. 오늘날 의학적 상식에 다소 어두우신 어르신들이 병원에서 그저 포도당 용액에 지나지 않는 '링게루'나 '주사' 한 방 맞으면 기운이 쑥쑥 난다 하시는 것처럼, 이 당시에도 설탕은 직접적이고도 신속한 포도당 공급원으로서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효과가 있었겠지요. 밀가루로만 만들어진 새하얀 밀빵 하나가 중세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사치였는지를 감안해보면.만성적으로 영양소 부족에 고순도의 탄수화물(포도당)을 섭취을 일시에 공급할 기회가 거의 없다 보니 그야말로 설탕 한 줌의 호ㅛ과라는것은 말 그대로 우와아아아 POWER가 넘쳐난다아아아!! 이런 느낌이 아녔을까 싶음.

어...이 대항해시대 말구요
소위 말하는 '대항해시대'를 통해 설탕은 좀 더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아메리카 신대륙에 넓은 면적의 사탕수수밭이 생겨나고 노예를 이용한 플랜테이션 농업이 확대됨에 따라 이에 필요한 '검은 화물'과, 유럽 상류층의 허영과 체면 유지를 위한 '흰 화물'의 무역이 크게 증가하게 됩니다. 전 지구적으로 보면 생산량이 크게 증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바다 건너 물건'이라는 데에 말도 안되는 프리미엄이 붙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 하긴, 그 당시에 커피와 차라는 것이 어느 수준 이상의 생활수준이 확보된 사람만이 즐길 수 있는, 철저히 사치품에 가까운 것이었으니 설탕 역시 그에 걸맞는 지위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Nestle Nescafe(TM) 신문광고 (1951)
이 당시에는 '아내가 가정의 커피를 책임진다'는 등의 뉘앙스를 가진 광고가 많았지요.

Maxim Maxwell 인스턴트 커피 광고
19세기~20세기는 대량 공장생산에 있어 굉장한 진보를 이룬 시대이고, 그것은 커피와 설탕 양쪽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그러한 커피를 기호품이 아니라 '카페인 주입기'로서 받아들이기도 했지요. 커피의 쓴 맛을 덮기 위해서 설탕이 사용되기도 했겠지만, 활력을 불어넣고 카페인의 각성 효과를 배가시킨다는 점에서 설탕은 커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대부분의 일터에는 '커피 타임(Coffee Break)'이 있고 커피 한 잔을 통해 여유를 찾는 척 하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 합법적인 약물을 할짝거리면서 전체적으로 일을 더 많이 하게 되었슈. 매우 저가의 비용으로 종업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업무 효율성을 도모한다는 그럴싸한 이유로, 마치 요즘 경영자들의 화두가 다운사이징이랑 아웃소싱이듯이, 당시에는 매우 혁신적인 경영 노하우로서 커피 타임이 여기저기 일터에 들불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까지 남아 있어서어떠한 직장에서도 '커피'를 마시는 것은 결코 배척되는 일이 없고, 커피 타임은 없더라도 언제나 그 구성원들에게 신속히 카페인을 공급할 수 있는 태세는 갖추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베트남, 싱가포르 등지에서 유명한 인스턴트 커피 브랜드 G7
특히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 있어서는 '신속한 카페인 주입'이라는 목표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나, 간편하게 준비할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가 득세하게 됩니다.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 로부스타를 메인으로 쓰고, 특유의 쓰고 텁텁한 맛을 감추기 위해서 설탕과 커피 크피머가 뒤를 이어 따라오게 되었지요.
인스턴트 커피 중에서도 더더더더더더더욱 간편한 커피믹스의 창조주(?)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20세기 후반의 잘 나가던 개발도상국이었던 점을 자랑으로 여겨야 할지... 좀 애매하네요. 기호품으로서의 선택이나 취향의 다양성 등은 쓰레기통에 쳐박힌 선택이긴 하다만... 카페인 폭탄이지만 쓰고 텁텁한 인스턴트 커피를, 절대로 그냥은 먹을 수 없는 대량의 설탕과 기름에 '신속하게 말아'먹을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가 있겠슈.

각설탕 형태의 카소나드(정제도가 낮은 설탕)로 유명한 프랑스 Beghin-say사의 앵무새설탕
국내에도 매니아가 꽤 있슈. 나 포함.
에스프레소 전문점이 일반화되고 있는 요즘, 설탕에 대해서는 다시 주목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상 한 두 스푼의 설탕을 넣어서 마시는 에스프레소의 특징상, (솔로 기준) 커피 한 잔 30ml에 대해서 4~5g의 설탕을 넣는 것이 일반적인 마시는 법이다 보니 설탕의 '맛'이 커피 전체의 맛을 크게 좌우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

설탕은 의외로 크레마나 스팀밀크의 점도를 측정하는 간접적 지표로 쓰이기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황설탕과 백설탕은 단순히 색의 차이라기보다는, 그 맛에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통상 많이 쓰이는 백설탕은 말 그대로 순수한 단맛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원재료의 맛에 거의 변화를 주지 않고 단맛만을 덧붙여주기 때문에 대대로 홍차계(?)에서 널리 쓰였고, 핸드 드립 커피에서 단 맛을 느끼고 싶을때에도 통상 맛의 변화를 주지 않도록 백설탕이 이상적.
반면 맛 자체가 강렬한 에스프레소의 경우, 설탕 정제 과정에서 미처 걸러지지 않은 불순물들에 의해 특유의 감칠맛을 내는 황설탕과의 궁합이 더 좋습니다. 얕은 맛의 재료에는 얕은 양념을 사용하고, 진한 맛의 재료에는 강한 양념을 넣어서 맛을 돋구듯이 상대적으로 맛이 옅고 섬세한 드립 커피에는 백설탕이, 그리고 에스프레소에는 황설탕이 잘 맞는다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나오네요. 비슷한 이유로, 프렌치 프레스로 추출한 커피나 카푸치노 같은 메뉴에도 황설탕이 더 궁합이 좋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
다만 에스프레소 전문점의 대부분이 이런 섬세한 부분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다 보니, 현실은 그저 모두 설탕시럽으로 통일하는것이지요. 물론 간편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병에 주구장창 담겨 있는 시럽들의 위생관리는 차치하고라도 단순히 단맛을 내기 위해서 설탕을 필요로 한다...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설탕 역시 커피의 맛을 돋구는 중요한 역할로서 선택의 폭이 넓었으면 하는 욕심이 있슈. (실제 소비자가 접하는 현장은 논외로 하고) 그렇게 가루같이 까이는 프랜차이즈 S커피점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2종의 가루 설탕, 3종의 파우더, 혈당 관련 환자를 위한 합성감미료(아스파탐 등) 등이 준비되어 있는데 이런 부분은 참 잘 되어있다고 생각함.
물론 기호품에다가 첨가하는 또 다른 기호품으로서의 설탕이니 만큼, 핸드 드립 커피에 황설탕을 넣으면 역적으로 몰려 주리를 틀린다던가 하는 일은 없슈. 커피의 첨가물이 설탕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견과류나 향신료 등 수많은 세상의 재료들을 커피에 덧붙여서 즐길 수 있으니까요. 다만 기호품이라는 것은 그 맛을 조금씩 바꿔 보거나, 자신의 입에 맞는 것으로 맞추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재미가 있는 것이다 보니 한번쯤 신경써 보는 것도 그럴싸한 커피 생활이 될 수 있겠네요.




덧글
지방커피 투어를 잠시 하며 원두구매할까 생각 중입니다.. 서울은 그냥 가게만 많은 것 같습니다;;
대구나 대전 쪽에 괜찮은 커피집이 많다던데 기대해보겠습니다 :)
더운 나라일수록 단 것을 먹는다는 그런 경향이 있으려나?
어떤 데는 보니까 설탕을 더욱 곱게 갈아서 시나몬 파우더와 섞어서 별도로 준비한 가게도 있더군요.
제가 입에 막대기 물고 키보드 치는것도 아닌데 이래 포스팅속도가 느려서야... 게으른게 부끄러울 따름 ㅠㅠ
여기서 흑설탕 가끔 씹는 재미도 상당하다우. …건강의 주적인게 문제지만oTL
너의 이런글을 볼때마다(특히 앵무새 설탕 부분에서)
많이 미안하다...
그리고 삼다수와 에비앙의 비유는 적절하지 않다.
고소고소 고소미! 너고소 고소미!
그때 그걸 알았다면 황설탕을 골라 넣었을 텐데.